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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뿌리개 - 르 레인시의 정원 The Watering Can – Garden at Le Raincy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April 15, 1452 ~ May 2, 1519

작가소개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조르주 쇠라(프랑스어: Georges Seurat, 1859년 12월 2일 ~ 1891년 3월 29일)는 프랑스의 화가이자 신인상주의의 창시자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대작인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신인상주의의 시작으로 현대 예술의 방향을 바꾸었고, 19세기 회화의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쇠라는 파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샹파뉴 출신의 법공무원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파리 출신이었다. 쇠라는 조각가인 쥐스탱 르캥과 함께 처음 예술을 공부하였다. 쇠라는 1878년과 1879년 에콜 데 보자르에 출석했다. 브레스트 육군사관학교에서 1년간 복무한 뒤 1880년 파리로 돌아왔다. 자신만의 작업실로 옮기기 전까지 파리의 센강 좌안에서 그는 두 명의 학생 친구들과 작은 작업실을 공유했다. 그는 그 다음 2년간 흑백화를 그리는 데에 노력을 쏟았다. 그는 1883년 처음으로 그의 주요한 작품을 남겼다. 작품의 이름은 〈아스니에르의 물놀이〉였다. 파리 살롱에서 그의 그림이 거절당한 뒤, 쇠라는 이와 같은 주류파에서 벗어나 대신 파리의 독립적인 예술가들에 가담하게 된다. 1884년 그와 다른 예술가들은 (막시밀리안 루스(Maximilian Luce)를 포함하여) 독립 예술가 협회(Société des Artistes Indépendants)를 결성했다. 여기서 그는 동료 예술가인 폴 시냑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쇠라는 점묘주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가진 후에 같은 작품으로 그림을 그린 시냑과 공유했다. 1884년 여름 쇠라는 그의 걸작인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그리기 시작해 완성하는 데에 2년이 걸렸다. 이후 그는 클리쉬 거리(Boulevard de Clichy)에서 가까이에 있는 작업실로 옮겨, 젊은 모델 마들렌 크노블로흐와 비밀리에 함께 살았다. 1890년 2월 그녀는 아들을 출산했다. 쇠라는 부인과 아들을 그의 부모에게 소개한 지 2일도 되기 전에 사망했다. 그가 죽은 뒤 마들렌은 그의 56세를 출산했으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쇠라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막염, 협심증, 폐렴, 디프테리아 중 하나가 아닐까 추정되고 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서커스〉는 그의 죽음으로 영원히 미완성이 되었다. 쇠라는 신인상주의의 일파이며 '신인상주의'라는 이름에 걸맞게 점묘화라는 새로운 그림 표현 기법을 창조해내었다

작품소개

물뿌리개 - 르 레인시의 정원(The Watering Can – Garden at Le Raincy)


뛰어난 예술가 조르주 피에르 쇠라(Georges-Pierre Seurat)가 포착한 자연의 고요함을 담은 매혹적인 스냅샷입니다. 이 매혹적인 유화는 우리를 19세기 후반 프랑스 시골의 고요한 구석으로 안내합니다. 쇠라의 색과 빛에 대한 숙달은 모든 붓터치에서 명백히 드러납니다. 그는 이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을 장식하는 활짝 핀 꽃과 무성한 나뭇잎의 생생한 색조를 능숙하게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햇빛과 그림자의 유희는 천상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장면 전체에 부드러운 빛을 발산합니다. 이 걸작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평화로운 분위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우리는 피부에 닿는 태양의 따뜻함을 거의 느낄 수 있고, 부드러운 바람에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자연의 광채 속에 전략적으로 배치된 물뿌리개는 이 목가적인 환경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Seurat의 독특한 스타일은 멀리서 볼 때 작은 점이나 획이 형태와 질감을 만드는 점묘법 또는 분할주의로 알려진 자신만의 혁신적인 기술과 인상주의 요소를 혼합합니다. 이러한 세심한 접근 방식은 "The Watering Can - Garden at Le Raincy"의 모든 세부 사항에 깊이와 풍부함을 더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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